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잃을 게 없다 (문단 편집) == 잃을 것이 없는 자 vs 지킬 것이 있는 자 == 잃을 것이 없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자와 지킬 것이 있어 끈기와 목표의식을 갖는 자가 대립한다면 누가 승리할지에 관한 문제는 마치 [[사자 VS 호랑이]]처럼 종종 가십거리로 회자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황과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르며 명확한 답변을 낼 수가 없는 문제이다. 당장 그 싸움이 몸싸움이거나 단기적인 승부, 감정싸움 등을 말한다면 잃을 것이 없는 자가 유리하다. 악플러에게 져주는 유명인, 진상에게 혀를 내두르는 가게 주인, 양아치에게 주먹을 아끼는 격투기 선수 등이 그 예이다. 맨날 져주던 부하 직원이 조직을 떠나 스스로 '잃을 게 없는' 상태로 만든 뒤에 복수하는 클리셰도 있다. 복싱 챔피언이 타이틀을 잃을까 봐 몸을 사리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명의 도전자에게 패하는 [[록키]] 클리셰도 있다. '부자 몸조심'이라는 관용구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똑같이 가게에서 진상을 부려도 노숙자가 진상부린 사건은 노숙자에게 별다른 데미지가 없으나, 공무원이 그랬다가 잃을 게 많았다. 네티즌들은 해당 공무원이 소속된 시청 홈페이지에 찾아가 항의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1519368?sid=102|마스크 착용 무시한 당진시 공무원 2명 직위해제...행안부도 감찰 착수]] * 동양대 교수였던 진중권은 한동안 중단했던 논객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일단 동양대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고 한다. 교수직 그만둔 것은 나름의 ‘[[청야 전술]]’이라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047019?sid=102|'''"들판을 비워버리는 것처럼 나를 공격할 요소를 아예 없애버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흔한 클리셰가 잃을 게 없는 악당이 주인공의 애인을 인질로 잡고 협박할 때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며 리드해 나가다가 결국 주인공에게 패하는 것이다. 그냥 악당이 적당히 요구할 거 얻고 풀어주면 되는데, 굳이 선을 넘어 애인을 해하려다가 주인공이 달려들며 싸움이 벌어지고 장렬히 패배한다. 이 싸움에선 주인공에게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명분과 동기부여가 강한 반면, 악당은 굳이 모든 것을 바쳐 주인공을 물리쳐야 할 명분이 떨어지기에 위기에 몰리면 허무하게 자멸하곤 한다. 어차피 악착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자폭을 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은 쓰러지기 직전, 영화 '클레멘타인'의 명대사인 "아빠! 일어나!!"와 같은 버프를 받고 마지막 힘을 짜내 올인하여 악당을 물리치곤 한다. 물론 주인공이 잃을 게 없는 포지션이라면 '주인공 버프'를 받아 대개 주인공이 이긴다. 이때 '[[오늘만 사는 사람]]'인 주인공은 비록 악당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긴 하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저 놈은 반드시 죽인다"는 목표 하나 만큼은 너무 강하고 몰빵한 상태기에, 잃을 게 많아 몸을 사리는 악당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주인공이 처음엔 잃을 게 많아 괴물에게 양보하며 끌려다니다 괴물에 의해 다 잃은 후 폭주하여 물불 안가리고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결국 타고난 체급차와 능력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차피 괴물도 잃을 게 없는 자였으니 쌤쌤'''이라서 '잃을 게 없는 버프'가 상쇄되어 버린 것이다. 괴물도 자신을 창조한 주인공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주인공의 고통이 유일한 행복'이었기에 '잃을 게 없는 자 vs 잃을 게 없는 자'였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꼭 너 하나는 잡는다"는 목표가 있어야 무서워지는데, [[아베 신조 피살 사건]]을 보면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니 상대 입장에선 다소 무서울 수 있다. 지킬 게 있는 사람 역시 "꼭 너 하나는 지킨다"는 목표가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릴 수 있다. 미국 철학자 스티븐 아스마는 한 윤리학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목을 졸라야 제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래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마치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달려드니 충분히 무섭다. 직장인들은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도 딸린 식솔들을 생각하며 참는 클리셰가 있는데(충동을 제어하는 안전장치 역할), 딱히 얽매인 것이 없는 솔로들은 욱하면 그냥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떠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군대나 직장에서는 가정이 있는 사람을 안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직장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라고 종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 실적이 더 좋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이 좀 더 책임감 있게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보다 가족이 있는 사람을 더 대우하고 승진시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사랑하던 가족이나 애인을 잃은 사람들이 현실을 잊으려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오래 가지 못하고 몸이 망가진다. 사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되도록 몸을 사리려 하는 경향이 더 크다. 다만 주로 집에 빚, 자녀의 학자금 등으로 과도한 지출이 있거나 회사가 과로 아니면 퇴사를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경우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빨리 발을 빼는 것에 비해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다 못해 [[과로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과연 무엇이 승리인지를 판가름하는 관점에 따라서도 결론이 제각각이다. 예컨대 앞선 악플러와 유명인의 예시에서 갑갑하지만 풍족한 인생을 사는 유명인,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악플을 쓰고 싶어도 자제력을 발휘하는 일반인, 집도 차도 직업도 가족도 없어서 인터넷에서 내키는대로 악플을 쓰고 다니는 악플러가 있다면 당장 자기 하고싶은 대로 행동하고 남을 일방적으로 모욕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악플러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행동을 통해 얻고 있는 인생의 만족도 면에서 보면 그 행동과 결과는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 군인의 경우에도 목숨 걸고 지킬 것이 있는 군인이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한다.[* 영화 [[마인]]에서도 사막 한복판에서 지뢰를 밟은 미군 주인공이 구조를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대나, 문득 고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애인을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애인에게 청혼하자는 목표로 괴로움을 이겨낸다.] 특히 전쟁이란 것은 군인 개인의 사적인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므로 '지킬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명분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잃을 게 없는 막장 인생이라면 책임질 것도 없기 때문에 제멋대로 돌출 행동을 벌이며 [[약탈]]과 [[민간인]] 및 [[포로]] [[학살]] 등 범죄 유혹에도 취약하다.[*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는 군대의 폐해는 [[카민스키 여단]]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가족과 명예 등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기강을 바로 세우고 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실제로 지휘관들도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지켜야 할 가족의 가치에 대해 강조한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나서 국가가 대신해서 가족들을 지켜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국가를 위한 방향으로 표출되지 않고 당장 목숨을 부지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편 스토리 구조로 보았을 때 잃을 것이 없는 자는 극적인 연출을 주기가 좋다. "단지 잃을 게 없는 것"이면 밋밋하지만 "원래는 이것저것 많았지만 타의에 의해 전부 제거당하고, '''반드시 이뤄야 할 단 한가지의 목표, 그것을 이룰 강한 의지 또는 수단만이 남겨진 상태'''"는 만들기도 쉽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심리 상태가 될 수는 있지만, 미디어적으로는 아무래도 전부 잃어버린 쪽에 비하면 비장한 미학이 떨어지는 편이다. 창작물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자가 도리어 강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어차피 잃을 게 없다 보니 강자에게 오히려 막 나가고 약자에겐 [[동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킬 게 있는 자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점차 조직에 물들어가는 때가 많다. 이러다보니 강자들일 경우 잃을것이 없는 자를 매우 무서워하지만 반대로 약자들이라면 오히려 이상적인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주로 가상 속의 영웅들에게서나 볼 수 있고 정작 현실에서 잃을 것 없는 자들은 약자를 공격할 때가 더 많다. 인생에 마땅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 막 살기로 한 [[묻지마 살인]]범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언제나 육체적 약자인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들 등이다. 제멋대로 살 수 있다는 마지막 남은 쾌감을 빨리 빼앗기기 싫어서 강자들을 슬슬 피하며 타겟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의거로 칭송받는 부당한 강자들에 대한 테러는 아이러니하게도 되려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이 가진 걸 스스로 버리고 행한 경우가 훨씬 많다. * 국가 대 국가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이런 구도이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잃을 게 적다는 점을 이용해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은 북중, 북러 관계에서는 잃을 게 무척 많은 지라 '을'의 입장이지만, 남북 관계에서는 이미 다 깨진 남북관계이니 우리에겐 아무런 손해 없다며 [[서울불바다]]를 언급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992542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822072|#]] 이에 대해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1453604|'남북 관계 끊어져도 우리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라며 관계를 끊으면 손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해보자면 실패하여 잃을 게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하여 얻을 것도 있어야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지킬 게 있더라도 그것이 본인의 직책과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